조만간 확정될 SK하이닉스의 연말 성과급 봉투 두께를 두고 업계 안팎이 꽤나 술렁이고 있다. 증권가에서 내다보는 SK하이닉스의 2025년 영업이익은 대략 45조 원 남짓. 3분기까지 벌어들인 누적 영업이익 28조 원에 4분기 전망치 16조 9500억 원을 더한 수치다. 영업이익의 10%를 성과급 재원으로 떼어주겠다는 회사의 약속에 따라, 3만 3000여 명의 직원들은 1인당 평균 1억 3000만 원 수준의 목돈을 쥐게 될 것으로 보인다. 근속 연수가 꽤 차거나 고과가 최상위권이라면 2억 원 이상을 챙기는 이들도 수두룩할 전망이다. 그동안 성과급의 암묵적 상한선으로 여겨지던 ‘기본급 1000%’라는 천장을 올해부터 과감히 걷어차 버렸기에 가능한 일이다. 겉보기엔 글로벌 반도체 인재를 싹쓸이하겠다는 맹렬한 기세다.
인재 지키기, 돈뭉치 vs 고용 안정성
이처럼 하이닉스가 파격적인 금전적 보상으로 인재 록인(Lock-in)에 나섰다면, 맞수 삼성전자는 조금 다른 각도에서 내부 결속력을 어필하고 있다. 최근 일각에서 “삼성전자의 퇴사율이 10.1%로 하이닉스(1.3%)보다 8배나 높다”는 분석이 나오자, 삼성 측이 억울함을 표하며 내놓은 데이터가 꽤 흥미롭다.
반도체 사업을 진두지휘하는 DS 부문만 떼어놓고 보면 최근 5년(2020~2024년) 평균 이직·퇴사율은 고작 1%대 후반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베트남이나 인도 같은 대규모 해외 생산기지의 잦은 인력 변동성까지 전부 뭉뚱그려 계산한 수치를 두고 국내 핵심 연구·생산 인재들의 이탈표로 해석하는 건 명백한 통계적 착시라는 항변이다. 실제로 같은 기준을 적용해 국내 인력만 놓고 보면 삼성의 최근 5년 평균 이탈률은 2.1%로, 오히려 하이닉스(2.3%)보다 낮았다. 잣대를 어떻게 대느냐에 따라 숫자의 맥락은 완전히 뒤바뀐다. 하이닉스의 화끈한 성과급이나 삼성전자가 강조하는 업계 최고 수준의 고용 안정성 모두, 결국 피 말리는 인재 확보전에서 우위를 점하기 위한 각자의 무기인 셈이다.
성과 공유의 그늘: 상생과 주주 환원이라는 청구서
문제는 하이닉스가 쏘아 올린 이 기록적인 돈 잔치가 마냥 축배만 들고 끝날 일이 아니라는 데 있다. 경영진의 책상 위에는 당장 풀어야 할 묵직한 청구서들이 쌓여 있다.
가장 민감한 뇌관은 하청업체와의 상생 이슈다. 당장 오는 3월, 원청의 책임을 대폭 강화하는 노란봉투법(개정 노동조합법)이 시행된다. 본사 직원들만 억대 성과급을 챙기는 상황에서 “우리의 기여도는 안중에도 없느냐”는 협력사 직원들의 볼멘소리가 터져 나오기 십상이다. 최근 한화오션이 하청 직원에게도 정규직과 동일한 비율의 성과급을 지급하겠다고 나서고, 정치권에서 이를 노골적으로 치켜세우며 기업들을 향한 무언의 압박은 한층 거세졌다. 최창원 SK수펙스추구협의회 의장이 최근 사장단 회의에서 “사회가 기대하는 수준의 동반 성장”을 콕 집어 주문한 것도 이런 싸늘한 여론을 의식한 행보로 읽힌다.
게다가 주주들의 눈치도 살펴야 한다. 지난해 상법 개정으로 ‘이사의 주주 충실 의무’가 떡하니 명문화된 마당에, 다가올 3월 주주총회는 그야말로 지뢰밭이다. 소액주주들과 행동주의 펀드들이 주총장에 나타나 “직원들 배만 불리지 말고 배당을 대폭 늘리라”며 목소리를 높일 게 불 보듯 뻔하다. 한정된 곳간에서 내부 직원, 하청업체, 주주들의 입을 동시에 만족시키는 건 수학적으로 매우 피곤한 난제다.
600조 원의 압박, 피할 수 없는 투자의 딜레마
무엇보다 등골을 서늘하게 만드는 건 미래를 담보할 천문학적인 시설 투자금이다. AI 열풍을 타고 HBM 시장에서 제대로 상승 기류를 타긴 했지만, 냉정히 말해 기초 체력인 절대적인 생산 설비 캐파(Capacity)는 여전히 삼성전자에 밀린다. 서둘러 덩치를 키워야 하는데 견적서의 단위가 살벌하다. 경기도 용인에 조성하기로 한 반도체 클러스터만 해도 애초 120조 원이면 될 줄 알았더니, 첨단 공정 장비들을 욱여넣고 용적률을 끌어올리다 보니 어느새 5배나 뛴 600조 원으로 덩치가 커졌다.
향후 10년(2035년)간 매년 영업이익의 10%를 성과급 재원으로 고정 지출하기로 노조와 도장을 찍은 상태에서, 이 거대한 투자금을 어떻게 융통할지 SK그룹 전체가 정부의 국민성장펀드니 특수목적법인(SPC)이니 온갖 카드를 만지작거리며 머리를 쥐어뜯고 있는 실정이다.
결국 반도체라는 판은 최상급 인재들의 두뇌와 조 단위의 자본이 맞물려 돌아가는 잔혹한 톱니바퀴다. 화끈한 보상으로 기선을 제압한 SK하이닉스나, 통계적 착시를 걷어내며 굳건한 조직력을 과시하는 삼성전자 모두 각자의 생존 방식을 증명해 내야 하는 출발선에 섰다. 당장의 파격적인 보상과 내일을 위한 천문학적 투자, 그리고 주변 생태계와의 아슬아슬한 줄타기. 이 미묘하고도 복잡한 방정식의 균형을 먼저 찾아내는 쪽이 다음 턴의 온전한 승자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