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 5월 10th, 2025

최근 번화가, 카페, 버스 안 등 일상 곳곳에서 “너 T야?”라는 말을 쉽게 들을 수 있다. 이는 “너 MBTI 검사에서 T(Thinking·사고형)야?”를 줄여 표현한 신조어로, MBTI 열풍이 새로운 형태로 확산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심지어 이 밈은 방송 프로그램까지 진출하며 대중문화 전반에 깊게 자리 잡았다.

이 유행어는 유튜브 숏 코미디 채널 <밈고리즘>의 ‘폭스클럽’ 시리즈에서 처음 등장했다. 극 중 ‘폭스’가 되고 싶은 김지유, 한지원, 허미진은 남자를 헌팅하기 위해 모이는데, 감정형(F) 성향인 김지유와 한지원이 기대에 부풀어 계획을 세우는 반면, 사고형(T) 성향의 허미진은 “잘생긴 사람이 세 명이나 우리한테 올 리는 없지”라며 현실적인 발언으로 분위기에 찬물을 끼운다. 이에 F 성향 친구들이 진지하게 묻는다. “너 T야?”

이때 주변에 있는 손가락, 화장품, 마늘 등 다양한 물건을 이용해 ‘T’ 모양을 만들어 보이는 것도 이 밈의 포인트다. 사물이 엉뚱할수록 웃음 포인트가 커진다. 심지어 “큐T”, “아모르파T” 등 T 발음이 들어간 단어를 조합해 유머를 극대화하거나, 대사를 거꾸로 말하는 변형까지 등장하며 다양하게 변주되고 있다.

MBTI, 대중화를 넘어 ‘토착화’로

이제 MBTI는 단순한 유행을 넘어 한국 사회에 깊숙이 뿌리내린 문화가 되었다. 마치 한때 외국 음식이었던 마라탕이 이제는 볶음밥이나 간식에까지 활용되는 기본 양념처럼, MBTI 역시 일상 속 대화와 유머의 재료가 됐다. “너 T야?” 밈을 통해 MBTI는 한국어 표현과 결합하고, 일상 사물과도 연결되며 생활 속 깊이 스며들고 있다.

MBTI가 국내에 소개된 것은 2010년대 초반, 대학교 교양수업을 통해서였다. 그러나 본격적으로 대중화된 것은 코로나19 대유행 시기, 코미디언 강유미가 유튜브에서 선보인 ‘유미의 MBTI들’ 시리즈 덕분이다. 처음에는 일시적 유행에 그칠 것 같았지만, 오늘날에는 성향별로 밈과 변형된 콘텐츠가 꾸준히 나오며 오히려 더 깊게 자리잡았다.

지금의 대중은 MBTI의 8가지 성향과 16가지 유형을 유연하게 활용하며 놀이하듯 즐기고 있다. 외향형(E)을 ‘대문자 이(E)’라 부르거나, 연예인 김호영이 자신을 “EEEE형”이라고 표현하는 등 변형도 자유롭다. ‘폭스클럽’에서는 평소 감정형이던 인물이 공감하지 않으면 “너 오늘 T가 69%야”, “T끼가 올라왔다”며 상황에 맞게 농담을 주고받는다.

T 성향이 유독 부각된 이유

특히 T 성향이 주목받는 이유는 무엇일까? 기본적으로 MBTI에서 T(사고형)는 의사결정 시 결과를 중시하고, F(감정형)는 과정을 중요시하는 차이가 있다. 문제 해결을 중시하는 T와 감정 공유를 중시하는 F의 차이는, 최근엔 ‘공감 여부’ 하나로 단순화되었다.

“너 T야?” 밈에는 사실 부정적인 뉘앙스가 담겨 있다. 유튜브 채널 <피식대학>의 ‘실전 한국어’ 시리즈에서는 “너 T야?”를 영어로 “What’s wrong with you?”라고 번역했을 정도다. 공감하지 않는 태도를 문제시하는 사회적 분위기가 투영된 것이다.

실제로 “너 T야”를 검색하면 ‘대답법’이라는 연관 검색어가 등장한다. T 성향인 이들이 이 질문을 들었을 때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고민하는 모습이 반영된 결과다. ‘T혐오’라는 신조어나, 일부 청소년들 사이에서는 T 성향이면 따돌림을 당한다는 호소도 나온다. 이는 사회 전반에 퍼진 ‘공감 강요’와 그로 인한 피로감을 드러낸다.

원래 MBTI는 민감한 개인 정보를 묻지 않고도 가벼운 대화를 할 수 있게 해주는 장점이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MBTI 성향을 숨기거나 대화를 피하는 경우도 늘고 있다.

높은 기대와 현실의 괴리

‘폭스클럽’ 시리즈의 주요 서사는 항상 ‘높은 기대 – 처참한 실패’의 반복이다. 멋진 남자와의 만남, 환상적인 여행지, 화려한 생일파티, 완벽한 다이어트 성공을 꿈꾸지만, 매번 기대와 다른 현실에 부딪힌다. 이런 맥락 속에서 “너 T야?”라는 대사는 높은 기대에 찬물을 끼얹는 현실주의자의 등장으로 해석된다.

결국, “너 T야?”라는 밈은 단순한 유행어를 넘어, 공감과 기대, 그리고 현실의 괴리 속에서 오늘날 사회가 직면한 피로감을 반영하는 문화적 코드로 자리잡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