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 2월 16th, 2026

올해 방송가는 그 어느 때보다 뜨거운 ‘전문직’ 열풍에 휩싸여 있다. 지난해에 이어 다시금 몰아치고 있는 법정 드라마의 파도와 넷플릭스 요리 서바이벌이 촉발한 미식 문화의 신드롬이 바로 그 주인공이다. 허구의 세계인 드라마 속 법정에서는 정의 구현을 통한 통쾌함을, 리얼리티 쇼인 주방에서는 치열한 승부와 장인 정신을 보여주며 시청자들의 눈과 귀를 사로잡고 있다.

다시 불어오는 법정 드라마의 바람, 지성 이어 이나영 출격

연초부터 안방극장은 법정 드라마의 격전지가 되었다. 포문을 연 것은 MBC의 ‘판사 이한영’이다. 거대 로펌의 입맛에 맞게 판결하던 판사가 10년 전으로 회귀해 거악에 맞선다는 설정은 시청자들에게 강렬한 카타르시스를 선사했다. 지성의 10년 만의 MBC 복귀작으로도 화제를 모았던 이 작품은 첫 방송 시청률 4.8%로 시작해, 입소문을 타고 지난 24일 기준 10.8%까지 치솟으며 흥행 가도를 달리고 있다.

이 기세를 몰아 톱스타들의 복귀작들이 줄줄이 대기 중이다.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이나영의 3년 만의 복귀작 ENA ‘아너: 그녀들의 법정’이다. 2일 첫 방송을 앞둔 이 작품은 여성 변호사 3인방이 과거의 거대한 스캔들과 맞서는 미스터리 추적극으로, 이나영은 ‘셀럽 변호사’ 윤라영 역을 맡아 정은채, 이청아와 호흡을 맞춘다. 이외에도 디즈니플러스의 ‘블러디 플라워’, SBS의 ‘굿파트너2’ 등이 출격 준비를 마쳤다.

현실의 답답함을 뚫어주는 ‘사이다’ 판결과 디테일의 힘

법정물이 이토록 사랑받는 이유는 명확하다. 권선징악이 뚜렷한 서사 구조와 속도감 있는 에피소드 진행이 시청자들에게 지루할 틈을 주지 않기 때문이다. 특히 현실 사법 시스템에 대한 불신이 깊어진 상황에서, 드라마 속 정의로운 판결은 대중에게 강력한 대리만족을 안겨준다. 윤석진 충남대 국문학과 교수는 “현실의 공권력이 해결해주지 못하는 갈증을 드라마가 해소해주기 때문에 법정물이 지속적인 인기를 끄는 것”이라며, 최근에는 변호사나 검사를 넘어 판사를 주역으로 내세우는 경향이 짙어지고 있다고 분석했다.

최근 흥행작들의 또 다른 비결은 ‘리얼리티’다. 실제 법조인들이 직접 펜을 들어 극본을 집필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최고 시청률 17.7%를 기록했던 ‘굿파트너’는 최유나 이혼 전문 변호사가, ‘서초동’은 이승현 변호사가 집필을 맡아 현장감을 살렸다. 판사 출신 문유석 작가의 ‘프로보노’ 역시 소외 계층을 위한 무료 법률 서비스라는 신선한 소재를 다루며 호평받았다.

스크린 넘어 식탁으로 번진 ‘요리 서바이벌’ 신드롬

드라마가 법정의 치열함을 다룬다면, 예능은 주방의 열기로 뜨겁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흑백요리사(Culinary Class Wars)’가 불러일으킨 파장은 단순한 엔터테인먼트를 넘어 한국의 외식 문화 자체를 뒤흔들고 있다. 미슐랭 스타를 보유한 유명 셰프(백수저)들과 재야의 고수(흑수저)들이 맞붙는 이 프로그램은 시즌2 공개 직후 넷플릭스 글로벌 톱10(비영어 부문) 1위에 오르며 5주 연속 차트를 지켰고, 시즌3 제작까지 확정 지었다.

방송의 여파는 오프라인으로 즉각 이어졌다. 레스토랑 예약 플랫폼 캐치테이블의 용태순 대표에 따르면, 시즌2 방영 후 출연 셰프들의 식당 예약 건수와 대기 등록은 이전 5주 대비 약 303%나 폭증했다. 서울시가 주최한 넷플릭스 셰프 팝업 이벤트에는 단 150명 모집에 45만 명이 몰려드는 기현상이 벌어지기도 했다.

단순한 식사를 넘어 ‘미식의 경험’으로

이러한 열풍은 셰프들의 삶과 식문화에 대한 대중의 인식까지 바꿔놓았다. 서울의 모던 코리안 레스토랑 ‘스와니예’의 이준 셰프는 13년 전 개업 당시만 해도 손님들에게 파인 다이닝의 개념을 이해시키는 것이 숙제였다고 회상한다. 그러나 방송 이후 이곳을 찾는 손님들의 태도는 완전히 달라졌다. 이 셰프는 “과거에는 낯설어하던 고객들이 이제는 맛의 조합이나 조리 기법, 요리에 담긴 철학에 대해 깊이 있는 질문을 던진다”고 전했다.

서울의 또 다른 레스토랑 ‘테이블 포 포’의 김성운 셰프 역시 방송 출연 후 달라진 위상을 실감하고 있다. 하루에 100통이 넘는 문의 전화를 받는 것은 예사고, 군 복무 시절 이후 가장 많은 편지를 받고 있다고 한다. 그는 “어린 팬들까지 편지를 보내오고, 식당에서는 사진 촬영 요청이 끊이지 않아 마치 연예인이 된 기분”이라며 웃음 지었다. 농사를 짓다 우연히 요리의 길로 들어선 그에게, 동경하던 전설적인 셰프들과 어깨를 나란히 했던 경험과 지금의 대중적 관심은 꿈만 같은 변화다.

결국 법정 드라마와 요리 서바이벌의 동반 흥행은, 장르는 다르지만 ‘진정성’과 ‘전문성’이 주는 몰입감이 대중을 어떻게 움직이는지를 보여주는 사례라 할 수 있다. 시청자들은 이제 브라운관을 통해 정의가 실현되는 쾌감을 맛보고, 화면 밖으로 나와 셰프들의 철학이 담긴 접시를 경험하며 콘텐츠의 확장을 몸소 체험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