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실리콘 밸리의 상징이었던 인텔이 명운을 건 재기 전략에 돌입했습니다. 2024년 190억 달러의 손실을 기록하고 미국 정부가 지분 10%를 소유하게 된 이 반도체 거인은 이제 미국 산업계 역사상 가장 주목받는 기업 회생 사례 중 하나가 되었습니다. 이미 25,000명의 직원을 감축하고, 111억 달러의 정부 지원을 확보했으며, 엔비디아와 소프트뱅크로부터 전략적 투자를 유치한 인텔의 미래는 이제 신기술과 막대한 자본에 달려있습니다.
기술적 승부수: 팬서 레이크와 18A 공정
지난 10월 9일, 인텔은 애리조나주 챈들러에 위치한 팹 52(Fab 52) 앞에서 립부탄(Lip-Bu Tan) CEO가 ‘팬서 레이크(Panther Lake)’ 프로세서 웨이퍼를 들고 있는 사진을 공개했습니다. 팬서 레이크는 인텔의 최첨단 18A 제조 공정으로 제작된 첫 번째 칩으로, 인텔이 모든 것을 걸고 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줍니다.
인텔은 팬서 레이크로 명명된 ‘코어 울트라 시리즈 3’ 프로세서의 아키텍처 세부 정보도 함께 공개했습니다. 이 프로세서는 “미국에서 개발 및 제조된 가장 진보된 반도체 공정”으로 설명되는 인텔 18A 기술이 적용된 첫 제품으로, 올해 말부터 출하될 예정입니다.
공개된 기술 사양은 어떤 기준으로 보아도 인상적입니다. 인텔에 따르면 팬서 레이크는 이전 세대 대비 최대 50% 향상된 CPU 성능, 최대 12개의 Xe 코어를 탑재하여 50% 이상 빨라진 그래픽 성능을 제공하는 새로운 Arc GPU, 그리고 AI 가속을 위한 최대 180 TOPS의 플랫폼 성능을 자랑합니다. 18A 공정 자체도 상당한 기술적 진보를 이뤘습니다. 2025 VLSI 심포지엄에서 발표된 바에 따르면, 18A 공정은 후면 전력 공급 기술을 통해 셀 활용도를 8~10% 개선하고, 인텔 3 공정 대비 약 30%의 집적도 향상을 달성했습니다. 이 공정에는 인텔의 게이트 올 어라운드(GAA) 트랜지스터 기술인 ‘리본펫(RibbonFET)’과 업계 최초로 상용화된 후면 전력 공급 시스템 ‘파워비아(PowerVia)’라는 두 가지 획기적인 기술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전례 없는 정부의 개입: 지분 투자
이러한 기술적 성과는 정부의 막대한 재정 지원 없이는 불가능했습니다. 2025년 8월 22일, 인텔과 트럼프 행정부는 미국 정부가 인텔 보통주에 89억 달러를 투자하여 회사 지분 9.9%를 인수하는 역사적인 계약을 발표했습니다.
이 투자는 기존에 할당된 반도체 법(CHIPS Act) 자금을 근본적으로 재구성한 것입니다. 공동 발표에 따르면, 정부의 지분은 기존에 승인되었으나 아직 지급되지 않은 반도체 법 보조금 57억 달러와 ‘시큐어 엔클레이브(Secure Enclave)’ 프로그램 자금 32억 달러를 전환하여 마련되었습니다. 이미 지급된 22억 달러의 보조금을 포함하면 총 정부 투자액은 111억 달러에 이릅니다.
정부는 이사회 대표권이나 지배 구조에 대한 권리 없이 수동적인 소유권만 갖게 되며, 제한된 예외를 제외하고는 주주 문제에 대해 회사 이사회와 동일하게 의결권을 행사할 것입니다. 또한, 정부는 인텔이 파운드리 사업부 지분 51% 이상을 유지하지 못할 경우에만 행사할 수 있는 5년 만기 워런트를 받았는데, 이는 사실상 인텔의 제조 부문 매각이나 분사를 방지하기 위한 조항입니다. 하워드 루트닉(Howard Lutnick) 상무장관은 “우리는 투자에 대한 지분을 받아야 한다”며 이러한 결정의 배경을 명확히 했습니다.
그러나 이 거래는 새로운 자금 지원이 아닌 기존 보조금을 지분으로 전환한 것에 불과하다는 비판에 직면해 있으며, 일부 법률 전문가들은 반도체 법이 이러한 전환을 허용하는지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며 법적 분쟁의 소지를 남겼습니다.
엇갈린 행보: 유럽 투자 계획 철회
미국 내에서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으며 재기를 노리는 인텔의 행보는 유럽에서와는 대조적입니다. 인텔은 2022년, 독일 마그데부르크에 300억 유로 규모의 메가팹과 폴란드 브로츠와프 인근에 46억 달러 규모의 반도체 조립 및 테스트 공장을 건설하겠다고 발표하며 유럽의 ‘반도체 자립’이라는 꿈에 불을 지폈습니다. 독일 정부는 약 99억 유로, 폴란드는 약 17억 유로의 보조금을 약속하며 유럽연합 집행위원회(EC)의 승인까지 받았습니다.
하지만 악화되는 재정 상황 속에서 이 계획은 2024년 말 중단되었고, 2025년 7월 립부탄 신임 CEO는 고객 확보 부족과 수십억 달러 투자에 대한 위험을 이유로 계획을 공식적으로 취소했습니다.
새로운 현실에 직면한 유럽의 반도체 전략
인텔의 철수는 독일과 폴란드에 실망을 안겼지만, 유럽의 반도체 전략이 완전히 멈춘 것은 아닙니다. 현재 유럽에는 TSMC가 주도하는 드레스덴의 유럽반도체제조회사(ESMC)와 같은 대안 프로젝트들이 활발히 진행 중입니다.
실리콘 색소니(Silicon Saxony)의 프랭크 뵈젠버그(Frank Bösenberg) 상무는 “인텔의 부재가 유럽의 2030년까지 20% 생산 목표 달성에 영향을 미치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하면서도, “가까운 미래에 유럽 대륙에서 최첨단 로직 공정은 갖지 못할 것”이라고 인정했습니다. 그는 유럽이 AI 슈퍼컴퓨터를 위해 엔비디아 칩에 막대한 돈을 쏟아부으면서 정작 그 칩을 생산할 팹이 없다는 것은 “명백한 모순”이라고 지적했습니다.
인텔의 철수로 확보된 독일의 국가 보조금은 다른 프로젝트에 재배정될 수 있지만, 이를 위해서는 새로운 지원 계획을 수립하고 EC의 승인을 다시 받아야 하는 복잡한 절차가 남아있습니다. 그 사이, TSMC, 보쉬, 인피니언, NXP가 합작한 ESMC는 100억 유로 이상을 투자하여 드레스덴에 신규 팹을 건설하고 있습니다. 이 공장은 유럽의 자동차 및 산업 부문에 필수적인 28/22나노 및 16/12나노 공정 기반의 성숙 공정 웨이퍼를 생산할 예정으로, 유럽의 현실적인 수요에 더 부합한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