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 가격의 상승세가 그야말로 매섭다. 지난해 말까지만 해도 트로이온스당 30달러 선을 맴돌던 은값이 올해 들어 두 배 이상 폭등하며 연일 사상 최고치를 갈아치우고 있다. 지난 19일 종가 기준 67.489달러를 돌파하며 1년 전 대비 130.5%에 달하는 기록적인 상승률을 보여주더니, 여세를 몰아 최근 현물(XAGUSD) 가격은 전장 대비 0.85%(0.64달러) 오른 온스당 75.93달러로 장을 마감했다. 몸집이 기하급수적으로 커진 은의 시가총액은 3조 7930억 달러에 달한다. 이는 3조 7250억 달러를 기록한 구글의 모회사 알파벳을 훌쩍 뛰어넘는 수치로, 현재 글로벌 자산 시장에서 금, 엔비디아, 애플에 이어 4위 자리를 꿰찬 상태다.
AI·전기차가 불 지핀 수요 폭발과 뭉칫돈 유입
이토록 가파른 랠리를 뒷받침하는 가장 큰 원동력은 차세대 첨단 산업의 가파른 성장이다. 인공지능(AI) 서버 구축을 비롯해 전기차, 로봇, 태양광 패널 등 미래 산업 전반에 걸쳐 은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어나고 있다. 산업계의 갈증은 고스란히 투자 자금 유입으로 직결되었다. 최근 한 달 사이 글로벌 시장에 상장된 은 현물 상장지수펀드(ETF)인 ‘아이셰어즈 실버 트러스트’에는 무려 14억 9200만 달러 이상의 막대한 자금이 순유입됐다. 국내 투자자들의 움직임도 분주해져 지난주 KODEX 은선물(H)에만 397억 원의 자금이 쏠리며 뜨거운 시장의 관심을 입증했다.
여기에 미국 지질조사국(USGS)이 최근 은을 ‘핵심 광물(Critical Minerals)’로 지정한 사실은 가격 상승에 기름을 부었다. 향후 은에 대한 관세나 무역 제한 조처가 내려질 수 있다는 시장의 불안 심리가 자극되면서 추가적인 프리미엄이 형성되고 있는 셈이다.
인플레이션 무시한 달러 약세와 팍팍해진 실물 공급망
거시경제 지표와 펀더멘탈 역시 은 가격을 강하게 밀어 올리고 있다. 최근 미국의 3월 소비자물가지수(CPI)가 1967년 이후 최대 월간 상승 폭을 보인 휘발유(21.2%) 등 에너지 가격 폭등에 힘입어 연 3.3%까지 치솟았다. 근원 CPI 역시 연 2.6%로 시장을 긴장시킬 만한 뜨거운 수치였음에도 불구하고 시장은 물가보다 달러의 흐름에 베팅했다. 달러 인덱스가 주간 기준 1.6%나 하락하며 1월 이후 가장 큰 폭으로 주저앉자, 오히려 달러 약세가 해외 구매자들의 은 접근성을 높이는 호재로 작용한 것이다.
실물 시장의 만성적인 공급 부족 현상도 가격 하방을 단단하게 지지해 준다. 은 협회(Silver Institute)의 전망을 살펴보면 2026년 실물 투자 수요는 전년 대비 20% 급증한 2억 2700만 온스에 달해 최근 3년 내 최고치를 기록할 것으로 보인다. 반면 광산 생산량(1% 증가)과 재활용(7% 증가)을 모두 합친 총공급량은 1.5% 늘어난 10억 5000만 온스 수준에 머물 전망이다. 연간 6700만 온스의 공급 부족이 기정사실화된 시장 구조가 은값의 든든한 버팀목 역할을 하고 있다.
50일 이동평균선 돌파 여부와 단기 조정 경계감
이처럼 연일 호재가 쏟아지는 가운데 증권가에서는 은이 금에 비해 여전히 저평가되어 있다는 분석에 무게를 싣고 있다. 삼성선물의 옥지회 연구원은 과거 원자재 급등기 당시의 전고점을 넘지 못한 몇 안 되는 자산 중 하나가 은이라는 점을 짚었다. 장기적으로 금 가격이 오를 때 은이 동반 상승하지 않은 전례가 없었던 만큼, 2026년 내내 금 랠리에 편승할 것이라며 목표가를 온스당 100달러로 과감하게 제시했다.
기술적 지표 역시 추가 상승의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다. 최근 은 가격은 주요 61.8% 되돌림 수준인 74.63달러 선을 강하게 돌파했다. 매수세가 붙어 이 구간을 단단한 지지선으로 다진다면 단기적으로 50일 이동평균선이 위치한 79.25달러를 향해 상승 탄력을 받을 수 있으며, 이를 넘어서면 다음 목표가는 83.61달러가 될 것으로 분석된다.
다만 최근 단기 급등에 따른 피로감과 가격 변동성 확대는 투자자들이 반드시 유의해야 할 변수다. 만약 74.63달러 방어에 실패해 차익 실현 매물이 쏟아질 경우, 단기적으로 67.36~69.32달러 선까지 가격이 되밀릴 가능성도 충분하다. 또한 LS증권의 홍성기 연구원이 지적했듯 은은 금 시장보다 실물 규모가 작아 투기적 수요에 따라 가격이 크게 출렁이는 구조적 한계를 안고 있다. 특히 미국 정부가 은에 대한 관세를 부과하지 않는 쪽으로 가닥을 잡는다면, 그동안 겹겹이 쌓였던 프리미엄이 한순간에 증발하며 가격이 급락할 수 있는 위험 요소도 분명히 존재한다.